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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1963년 여름, 동독에 둘러싸여 망망대해 속의 섬과 같던 베를린은 극도의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당시의 붉은 제국 소비에트 연방은 베를린을 동과 서로 나누는 벽을 쌓아 올리고, 서베를린을 서독으로부터 고립시키면서 서베를린을 무섭게 압박하고 있었다. 당시 소련의 목표는 서베를린을 동독으로 흡수 통합해서 서베를린 시민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시기에 그 당시 자유 세계를 대표하던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는 서베를린을 방문해서 베를린 장벽 근처에서 서베를린 시민들을 격려하는 연설을 하는 도중, 독일말로 "Ich bin ein Berliner!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고 발언함으로 서베를린 시민들을 열광시킨다. 그러면 왜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베를린 시민이라고 표현했을까? 또한 서베를린 시민들은 이 말에 왜 그토록 환호하며 열광했을까?

 

그 이유는 자명한 것이다. , 당시 자유 세계를 대표하는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케네디가 자유 세계에 속해있던 서베를린과 자유 세계를 동일시했기 때문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케네디의 말에는 "베를린 시민은 자유인입니다"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자유 세계의 도움을 담보하는 케네디의 이 말은 엄청난 정치적, 군사적 압력에 시달리던 서베를린 사람들에게 실로 커다란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케네디의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표현은 실로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비교할 수 없이 의미심장한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말인 것이다. 40년 전 당시 서베를린 시민이라는 표현이 정치적 자유인을 의미했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영원한 영적 자유인을 뜻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선포한 영적인 마그나 카르타 (MAGNA CARTA)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5:1)

 

사도 바울은 이 영광스러운 자유의 향유와 보존을 교회에 강력히 당부했다. 갈라디아서는 율법의 정죄와 저주로부터의 자유를 논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 논점은 우리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가계저주론이란 결국 율법의 저주를 교묘한 방법으로 변형시켜 그리스도인들 위에 부과해서 종의 멍에를 메도록 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계저주론은 갈보리산의 십자가의 은혜는 시내산의 율법의 저주를 상쇄하지 못했다고 가르친다. 이 그릇된 신학의 이론가들이 창안해 낸 은혜와 저주의 이분법 (위치적/실제적)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는커녕, 도리어 혼돈과 오류 및 이단 사상 (필자는 이 책에서 이단 사상을 성경과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 비추어서 해석할 때 본질적으로 분명히 다른 것으로 입증된 것을 지칭할 때 사용하며, 또한 근본적이고 치명적이며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성경적, 신학적 오류에만 한정해서 사용함)의 온상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를 철저하게 파헤쳐서 가계저주론의 실체를 밝히 드러낼 뿐 아니라, 가계저주론이 훼손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회복시키고 보존하기 위해서 저술되었다.

 

책은 매우 논쟁적인 (Controversial) 책이다. 기독교 문학의 장르에 있어서 이러한 유형의 책은 논쟁적인 책 (Polemical Writing)의 부류에 속한다. 우리는 이러한 논쟁적인 형태의 글과 사역을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많이 만나게 되는데, 먼저 기독교의 창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목회에서 여실히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기독교의 가장 권위 있는 사도로 일컬어지는 사도 바울, 그리고 기독교의 지난 2,000년 역사에서 명멸했던 당대의 최고의 설교자들과 신학자들의 사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교부시대의 아다나시우스나 어거스틴, 중세의 존 위클리프나 요하네스 후스, 종교개혁 시대의 루터와 칼빈, 근세의 찰스 스펄전이나 B. B. 워필드 같은 경우가 이에 관한 몇몇 뛰어난 예가 될 것이다.

 

논쟁적 형태의 가르침과 사역이 2,000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필수 불가결한 성경적, 교회사적 전통이 된 이유는 명백한데, 그 이유는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순종할 뿐 아니라 후대에 전수하는 일은 기독교의 생명력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른 교리에 대한 논쟁과 이에 따른 교리적 정통성 시비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한 부분으로서, 기독교는 이러한 자가적인 여과 장치를 통해서 바른 교리를 정립해 왔고, 또한 기독교 교리의 정통성과 순수성을 지켜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과 목회가 활성화 되어서, 그 자가적이고 자정적인 역할을 충분히 함으로 교회가 바른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진리를 소홀히 하면서 외적인 일치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마치 앞에 마차를 두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비성경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기독교의 모습이고, 결국에는 교회의 약화와 쇠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여명기에 놓여 있는 한국 교회가 뜨겁고 역동적인 모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신학적인 정통성과 깊이 및 균형 감각을 갖추고 더욱 고양된 도덕적인 수준 과 혁신적이며 상황과 시대에 민감한 실천력을 갖추고 세계 교회 앞에 성숙하고 균형 잡힌 리더로서 우뚝 서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 수준 높은 논쟁적 설교와 강의와 저술의 르네상스를 기대해 본다. 바라기는 이 시대에 제2의 스펄전, 3의 워필드 같은 경건하고 사려 깊고 논지가 분명한 강단과 문단에 나타나서 한국 교회의 주역들이 되어 한국 교회를 세계적 수준의 교회로 끌어올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책은 그릇된 교리를 학문적으로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분명한 목회적 관점과 관심을 가지고 쓰여졌다. 이 책은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설명함으로 고난 당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고난을 이해하고 또한 그 고난을 극복하도록 격려하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쓰여졌다. 평생 깊고 큰 고난을 경험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9, 10절에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을 자랑하고 기뻐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던진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이라는 표현 속에는 바울이 지니고 있던 "육신의 가시" 외에 또 다른 약한 것들이 바울에게 많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난 역시 자랑하고 기뻐할 이유가 된다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적인 주장을 한다. ,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10)"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의 스토익 철학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심리학에 근거한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결과도 아닌 것이다. 이러한 역설적 확신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를 통해서 주어진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분명한 목적 의식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는 자신의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이 바울에게 계시로 알려졌을 때, 바울은 고난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압도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이처럼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은 바울이 크고 많은 자신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결정적인 신앙적, 신학적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고난에 대한 이러한 의미심장한 성경적 관점을 얄팍하고 편협하며 인본주의적인 가계저주론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비성경적인 신학 이론이 결국 고난 당하는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고난에서 벗어나든지, 아니면 고난의 굴레 속에서 저주받은 삶을 살아가든지 양자 택일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사도 바울과 같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을 저주의 굴레 속에 집어넣고 심적 고통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성경적이며 무책임하며 몰인정한 것인가! 두 말할 나위 없이, 이것이 바로 사단이 성도들을 괴롭히고 패배시킬 때 사용하는 간교한 술책인 것이다!  

 

책을 쓰는 동안 필자의 가슴 깊은 곳에는 고난 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이 자리잡고 있었다. 타고난 정신적, 신체적 장애로 매일 매일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는 이웃들,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불행한 유산 때문에 남모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 가난이나 질병이나 예기치 않은 사고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는 이웃들, 어쩔 수 없는 주위의 정치적, 사회적, 가정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그러나 가계저주론이라는 그릇된 신학 이론의 희생자가 되어서 자신의 고난의 짐보따리에 무거운 심적 고통까지 얹어서 짊어지고 가고 있는 심히 고단한 이웃들을 도와야 한다는 강력한 책임 의식과 열망이 이 책의 저술을 재촉케 한 큰 동인이 되었다.

 

책에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불행한 유산, 혹은 남다른 고난을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한 8명의 위대한 신앙인들의 전기가 실려 있다. 이들의 실제적인 삶의 이야기는 가계저주론이 거짓된 것임을 드러내는 것 뿐 아니라, 고난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로 쓰여졌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고난을 극복한 삶의 이야기들로 인해서 큰 영감과 격려를 얻을 뿐 아니라, 성경적인 고난의 신학을 바르게 정립함으로 자신의 고난을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의미심장한 확신으로 극복할 수 있는 든든한 신앙의 토대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책에 나와있는 성도들의 삶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의 향기를 전하는 이슬 맺힌 붉은 장미요, 하나님의 끝없는 은혜를 표현한 웅장한 교향곡이며, 하나님의 위대한 용서를 반향하는 그랜드 캐년인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저술하는 동안 고난 당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비할 데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어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과 기대감에 설레이며, 때로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는 했었다. 간절히 바라기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책을 통해서 고난 중에 있는 이웃들을 크게 격려해 주시고, 성경적인 고난의 신학 위에 이들을 굳건하게 세워주셔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 바란다

 

책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에 의해서 쓰여졌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이 시점에 이 책이 출판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필자의 계획과 시간표를 뜻하신 대로 바꾸어 버리신 것 뿐 아니라,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 세 분으로 하여금 이 책을 추천토록 인도하셨다.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세 분의 영적 지도자에게는 뚜렷한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세 어른 모두 교회의 갱신과 사회의 개혁을 어느 누구보다 앞장서 추구해 오신 이 시대의 뛰어난 선각자, 선지자들이시며, 고난을 당한 사람들을 향한 특별한 사랑으로 그들을 위해서 희생적이며 독보적인 사역을 해 오신 분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의 기둥과 같은 이런 영적 거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이 책을 추천토록 인도하신 일 속에서 필자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깨닫고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세 분 목사님께 깊이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성경의 진리를 위해 담대히 일어나 싸우며, 약하고 고난받는 자들 편에 서서 사역하는 것을 탁월한 삶과 목회로 가르쳐 주신 제리 팔웰(Dr. Jerry Falwell) 목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리버티 대학의 설립자이신 팔웰 목사님은 참된 영적 사표로서 필자의 영적 순례의 길에 한결같이 선하고 능력있는 길잡이가 되어 주셨다. 또한 필자가 이러한 책을 쓸 수 있도록 필자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 주신 모든 분들게 깊이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더불어 이 책의 조속한 출판을 위해서 힘써 주신 김승태 사장님과 예영 커뮤니케이션 직원들의 노고에도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출판에 가장 큰 힘과 격려의 원천이 되어 주신 사랑하는 가족 모두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바친다

 

20038

 

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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