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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한 슬픔과 고난의 골짜기에서
위대한 찬송의 시를 쓴
조셉 스크라이번

죄짐 맡은 우리 구주

 

 

1844년, 스크라이번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새로운 삶을 더블린에서 시작한다. 사랑하는 여인과 더불어 약혼을 한 그는 이제 내일로 다가온 그녀와의 결혼에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불행이 그날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만나러 오던 약혼녀가 스크라이번의 눈 앞에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강둑에서 미끄러져 강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며 기절을 했고, 황급히 뛰어간 스크라이번이 그녀에게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그녀가 숨을 거둔 뒤였다. 스크라이번은 후에 이 비극적 사건을 회상하며 그 때 자신의 세계의 밑바닥이 사라진 것 같았다고 당시의 충격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절망과 슬픔이 파도같이 밀어닥치던 이 시기를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극복한다.

 

1845년, 그로부터 1년 후, 스크라이번은 캐나다의 온타리오주로 이주하게 되며 거기서 산상수훈의 말씀과 같이 살기로 결정을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선한 이웃이 되었고,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온 사람들을 한 사람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스크라이번은 온타리오주 포트 호프(Port Hope)에서 살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포트 호프의 사마리아인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선행을 일과로 삼고 살았다. 그는 돈을 받고 나무를 잘라주는 법이 없었고, 오직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해서 나무를 잘라주었다고 한다.

 

1854년, 이처럼 선한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다시금 열렬한 사랑의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도 불행이 다시금 그의 길을 막고 서는데, 그가 사랑하던 여인이 결혼 1주일 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다시금 몰려든 인생의 먹구름 앞에서 스크라이번은 깊은 절망감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는 절망과 슬픔에 포로가 되지 않고 다시금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이 시련을 극복한다. 후에 아일랜드로 돌아와서 그는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 보면서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찬송시를 적어내려 가는데, 이 찬송시가 후에 그 유명한 찬송가 ‘죄짐 맡은 우리 구주(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가 되는 것이다. 다음은 스크라이번의 영문을 필자가 원문에 가깝게 번역을 하여본 것이다.



예수님은 얼마나 좋은 친구이신지

우리의 모든 죄와 슬픔을 짊어지시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기도로 아뢸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특별한 권리인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기도로 아뢰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자주 평화를 상실하며

얼마나 불필요한 고통을 짊어지게 되는가

시험과 시련을 가지고 있는가

고난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가

결코 낙심하지 말고

주님께 기도로 아뢰시오

우리의 모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찾을 수 있나

예수께서 나의 약함을 아시니

주님께 기도로 아뢰시오

약하며 무겁게 짐진 자 있는가

염려로 짓눌린 자 있는가

소중하신 구주는 여전히 우리의 피난처 되시니

주님께 기도로 아뢰시오

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조롱하고 버린다 해도

주님께 기도로 아뢰시오

하나님께서 그분의 팔에 안아 주시고 보호하시리니

거기에서 위로를 발견케 될 것이오



이곳의 은혜스러운 찬송시가 보여주듯이 스크라이번은 두 번에 걸친 결혼의 실패를 자신과 자신의 가계에 내린 하나님의 저주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있어서 실패와 절망과 고통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였고 또한 하나님의 위로를 찾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물론 죄로 말미암은 고난과 고통이 있을 수 있으며, 이 때에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러나 시련과 고통이 거듭 닥친다고 해서 하나님의 저주, 게다가 성경에도 없는 조상의 죄로 인해서 대물림 된 가계에 흐르는 저주 때문이라고 믿고 괴로워하고 불안해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 또한 그렇게 하도록 불안감과 공포감을 조성해서야 되겠는가.

 

죄를 경계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더라도, 성경이 부정한 조상의 죄의 짐까지 추가해서 이미 가뜩이나 무거운 그리스도인들의 어깨에 죄의 짐을 올려 놓는 것을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 앞에 비추어 볼 때 가계저주론자들은 율법과 죄책감의 짐으로 사람들을 괴롭힌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김홍기 저 <가계저주론, 그 실체를 밝힌다>에서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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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3, 2005 0:4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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