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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콜로라도주 록키산중에 위치한 세계적인 휴양지인 아스펜에서 마이클 케네디 (Michael Kennedy)"스키 미식 축구"를 즐기다가 나무를 들이받고 사망했을 때 케네디 가문의 비극이 19981월의 뉴스위크지 표지의 큰 표제로 떠올랐다. 그 표지에서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그 사건을 "케네디 가문의 저주"라고 칭했다. "캐멀롯의 저주 (The Camelot Curse)" (캐멀롯은 아더왕의 궁궐이 있었다는 전설의 마을을 의미함--필자 주) 라는 제목을 붙인 기사에서 기자는 "새해에 바비의 불행한 아들인 마이클이 스키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케네디 가문에 저주가 있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라고 썼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1년 반이 지난 후 존 에프 케네디 주니어 (John F. Kennedy Jr.) 가 케이프 코드 (Cape Cod)에서 있을 가족의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조종해서 가다가 마르다스 빈야드 (Martha's Vineyard) 인근의 바다에 추락했을 때 케네디 가문의 또 다른 비극이 뉴스위크의 표제로 떠올랐다. 뉴스위크는 다시금 케네디 가문에 관한 특별 보고서를 "매혹적이지만 저주 받은 (Charmed Yet Cursed)"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비행기 추락과 암살, 전복된 차들과 약물 남용, 총격 사망과 익사 등과 같은 불행으로 얼룩진 가장 극적인 역사"를 기억나게 해주었다.

 

뉴스위크에 게재된 기사의 제목들과 큰 표제들은 미국의 대중 매체가 케네디 가문에 저주가 내렸다는 것을 믿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사실 그 기사들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주간지들이나 잡지들의 기자들과 편집자들이 독자들에게 미신적인 생각을 주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비극적인 사건들에 대한 지적인 분석과 평가를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사 제목들과 큰 표제들은 상업주의적인 미국의 대중 매체들의 단순한 선정주의적 보도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케네디 가문에 닥치는 연속적인 불행은 우리의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떠오르게 한다. 케네디 가문은 정말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인가? 케네디 가문에 저주가 있는가? 아마 어떤 사람들은 케네디 가문에 저주가 놓여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상상해 보았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위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믿음에 대해서 가계저주론자인 프랜시스 맥너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러한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두 가지 결과를 유발한다. . . . 둘째로, 때로는 복합적인 재앙들이 어떤 가정을 겨냥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세대에 걸쳐서 괴로움을 끼치는 불행을 생각할 때 당신의 마음에는 즉시로 미국의 여러 유명한 가문들이 생각날 것이다)."

 

하나님은 이전의 세대가 범한 죄들 때문에 후손들을 심판하실까? 하나님은 이전의 세대의 죄로 인해서 야기된 저주 때문에 그 후손들을 저주하시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단순하고 한가하게 제기할 수 있는 신학적 질문이나 성경적 윤리의 문제들이 아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진리에 대해 진지하지만 혼동하고 있는 많은 신자들에게 곤혹스러우면서도 그들의 삶에 매우 밀접한 질문들인 것이다.

 

실례로 필자는 2001년 가을 미주의 크리스찬 투데이라는 신문을 통해서 가계저주론을 주장하는 이윤호 목사와 지상 토론을 벌인 후에 성도 한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K 권사라고 밝힌 그 분은 필자 내외와의 만남에서 자신이 이윤호 목사가 쓴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매우 갈등을 많이 느꼈는데, 크리스찬 투데이에 실린 필자의 글을 읽으면서 이 문제에 관해서 신앙을 바르게 정립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한다는 말씀을 해주었다.

 

조상의 죄 때문에 그 후손들이 저주를 받는다는 사상은 실로 많은 신실한 신자들의 마음에 견디기 어렵고 불가해하며 불필요한 그리고 비성경적인 심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조상의 죄 때문에 그 후손들이 저주를 받는다는 생각은 사실 불신자들과 세속적인 사람들의 마음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조상들의 죄 때문에 그 후손들에게 저주가 임한다는 주장을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사상을 잘못 이해하면 이 사상은 성경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영적, 심리적, 정서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이다. 진지한 신자들은 성경이 죄와 그 죄의 결과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조상의 죄 때문에 그 후손이 저주를 받고 그 저주 속에서 고통을 당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진지한 신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곤혹스러우면서도 밀접한 질문이 되는 것이다

       

질문은 또한 의심스러운 성경적 윤리의 문제를 수반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조상)의 죄에 대한 책임을 단순히 혈통에 따른 관계가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다시 말해서, 단순히 가족이란 사실 때문에) 그 행동에 대해서 전혀 죄의 책임이 없는 사람(후손)에게 물으시는 것이 성경적 윤리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을 가족 관계에 직접 적용해 보면 더 이해가 쉬워진다. 예를 들면, 어떤 가정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살인을 했고, 그 살인 행위가 법정에서 명백히 입증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이 부모의 살인 죄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는 그 자녀들에게 형벌을 준다는 것이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보자. 이 부모가 살인이라는 극악무도한 죄를 범할 때 자녀들은 여행이나 사업차 외국에 체류하고 있으면서 이 사건에 관해서 전혀 들은 바가 없다고 하자. 그런데 그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귀국해서 인천공항 (미주 교포인 경우에는 로스엔젤레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이 체포해서 부모의 살인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이것이 과연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가? 게다가 당신의 부모가 살인을 해도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인 후 자살을 했으니, 이제 살아있는 자녀들이 그 책임을 지되 그 부모의 죄질이 나쁜 만큼 무거운 형을 받아서 평생토록 사면 가능성이 없이 독방에서 감옥 생활을 해야 한다고 법정이 언도한다면 과연 그것이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오늘날 세계 어느 나라의 법정을 막론하고 이런 판결을 내리는 곳은 없을 것이다. 법을 상식이라고 정의한 대한민국의 전헌법재판소장 김용준 판사의 주장처럼 부모의 죄의 책임을 그 죄와 아무 상관이 없고 따라서 아무 잘못도 범하지 않은 자녀에게 지운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직 목사이면서 동시에 변호사이기도 한 주명수 목사는 그의 책 복음을 지켜라에서 대한민국의 상속법 하나를 소개한다. 이 법에 의하면 아버지가 부채를 지고 사망했을 경우 그 아들이 그 부채를 고스란히 떠맡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도록 하자.

 

", 아버지가 부채를 지고 사망하였을 경우 상속자인 자녀는 3개월 이내에 재산 상속 포기 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 자녀는 그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부채를 고스란히 떠맡아야 되는 것입니다. . . . 그런데 빚을 상속받지 않으려면 3개월 이내에 상속 포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상속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부채를 떠맡아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도 살아가기가 힘이 드는데 아버지의 부채를 떠안고 살아가려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평생에 걸쳐 이 빚을 갚느라고 고생했던 예도 있습니다." 이 법의 특징 중 하나는 부친의 재산과 부채를 함께 받을 것인가 아니면 그 재산과 부채를 모두 포기할 것인가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 부채를 떠맡는 일이 타의에 의한 강제적이며 절대적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자발적이며 상대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선택할 수 있는 법이지만, 이것마저도 타당치 않다고 하여서 이 법이 개정된 것이다.

 

이것에 관한 주명수 목사의 말을 계속 인용해 보도록 한다. "그래서 이와 같은 법 규정이 부당하다는 지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이 민법 규정은 위헌이라는 헌법 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아버지가 진 빚을 상속인이 떠맡는다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다는 데 기인한 것입니다. 늦었지만 다행한 결정이라고 생각됩니다. . . . 이제는 아버지가 사망한 지 3개월 내에 상속 포기 신고를 하지 않라도 아버지가 진 빚을 고스란히 떠안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세상의 법정도 부모의 부채를 자식이 알지도 못하고 떠맡는 일은 법 상식에 합당치 않다고 하여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법정에서 부모의 죄의 책임을 그 죄에 대한 아무 지식도 잘못도 없는 그 후손에게 강제적이며 운명적으로 지운다는 일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합당하며 성경적이라고 강변하는 것이 바로 가계저주론인 것이다.

 

아마 개중에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분의 하시는 모든 일이 의롭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셔도 의롭다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 분 자신이 하신 말씀을 부정하실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명기 24장 16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반해서 같은 책 신명기 28장 15절에서 18절은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 . .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 . . 저주를 받을 것이며"라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언뜻 상반되어 보이는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모순된 분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가? 물론 천부당 만부당한 생각이다. 그러나 성경의 비평가들은 여기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모순을 발견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한편 가계저주론자들은 후자의 말씀 ( 28 15절에서 18)만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교리를 옹호하려 한다. 가계저주론자들의 주장이 담긴 책들을 보면 대부분 전자의 말씀 (신명기 24장 16)을 전혀 언급하지 않든지, 혹은 언급한다고 하더라도 말씀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해 버리고는 한다. 예를 들면, 신명기 24장 16절의 말씀에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음을 당치 않을 것이요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는 말씀을 가계저주론자들은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음을 당할 수도 있으며 각 사람은 자기 죄 뿐 아니라 조상의 죄 때문에도 죽임을 당한다"라고 해석한다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실례를 후에 이 책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 가계저주론자들은 성경의 일부를 교리화하기 위해서 성경의 다른 부분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성경을 편법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일부가 다른 부분과 비교해 볼 때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면 그 양쪽의 말씀들을 동등하게 놓고 조화와 통일을 시도해야 한다. 로울리는 이스라엘의 믿음 이라는 그의 책에서 이것을 잘 지적한다.

 

"한 단어 혹은 한 사건은 진리의 한 면을 다른 면 보다 더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의 사상과 가르침에 관한 그 어떤 연구이든지 양쪽 면이 다 기억되어야 한다."

 

이에 반해서, 일부 말씀을 교리화 하기 위해서 다른 부분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무시하는 태도나 다른 부분을 상대화하고 평가 절하하는 식의 편법 해석은 반드시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가계저주론은 바로 이런 편법적 성경 해석과 이에 따른 부작용의 대표적인 실례인 것이다.

 

신명기 24장 16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조상의 죄의 책임을 자손에게 지우시지 않는다는 점을 두 번에 걸쳐 명백히 했다. 첫째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음을 당치 않을 것이요"라는 말씀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면 신명기 28장 15-18절에서 주장하는 바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신 저주가 불순종하는 자들과 그들의 산업과 자손에게 미칠 것이라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 책에서 이 문제를 상세하게 다루겠지만, 먼저 여기서 요점을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명기 24장 16절의 말씀을 근거로 볼 때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는 기준은 개인적인 것이다. 둘째, 그러나 만약 그 하나님의 심판이 집단적인 것 (가족, 부족, 나라, 세계 등)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그 소속 집단 전체가 범한 집단적 죄를 심판하는 것이다. 셋째, 만약 하나님의 집단적 (혹은 연대적) 심판이 임하는 그 집단 속에 그 집단적 죄에 연루되어 있지 않은 죄 없는 사람들이 심판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그들은 그 집단의 일부 (보통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가 받는 심판의 결과나 영향력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구약 학자인 월터 카이저 교수는 이 세 번째 개념을 집단적 연대 (Corporate Solidarity)라고 부른다.

 

신명기 28장 15-18절 본문의 경우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부모가 저주를 받을 때 그 저주가 산업과 자손에게 미치는 현상은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원리를 적용해 볼 때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첫째, 불순종하는 조상이 받는 저주는 그들 자신에게 국한된다. 둘째, 불순종하는 조상과 함께 그 후손이 조상의 죄를 모방해서 함께 불순종할 때 그 조상과 후손 모두에게 저주가 임한다. 셋째, 조상의 불순종에 대해서 전혀 관련이 없는, 오히려 하나님께 순종하는 후손에게 조상이 받은 저주와 관련된 고통과 재난이 따를 경우 그것은 순전히 그 조상이 받은 심판의 결과와 영향력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계속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려 하고 또한 이것을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 집단에 공급해서 미국과 전세계에 테러의 위험을 가중시킨 것이 원인이 되어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벌어짐으로 이라크 국민들은 현재 전란과 패전의 큰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이 전쟁에서 후세인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던 이라크 국민들도 후세인 정권이나 그 정권의 지지자들과 동일한 운명 공동체에 속해서 그들과 같이 전란의 고통과 후유증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후세인 정권의 잘못에 대해 아무 책임이 없지만, 그들과 공동 운명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저질러 놓은 일의 결과와 영향력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국가적 차원의 악과 고통에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지만, 비교를 통한 개념 이해에는 매우 도움이 되며 이런 의미에서 이 예는 나름대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조상의 저주를 후손이 운명적으로 절대적으로 대물림 받게 된다는 이론은 1972년 케니스 맥콜이라는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에 의해서 시작되어 1986년 제이 헴프쉬라는 사람에 의해서 신학적인 이론으로 만들어져 발전된 것으로 그 역사가 불과 약 30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교리는 급속하게 전세계로 파급되어 가고 있다. 원산지인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남미, 한국 및 아프리카 등지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다. 특히 한국이나 아프리카와 같은 조상숭배와 정령숭배가 강하고 집단성이 강조되며 정치적, 경제적 위기와 불안이 고조된 지역에서 이 교리는 더 쉽고 효과적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가계저주론의 신봉자들은 가정치유 사역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하고 그것을 그들의 사역에 적용하며 진지하지만 충분한 지식이 없는 수많은 신자들을 혼동시키며 불안케 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처방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일을 합리화시키려 한다. 그러나 죽음의 의사로 일컬어지는 커보키안도 사람들이 편히 세상을 떠나도록 돕는다는 미명 아래 사람들을 독살하며 그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만든 그릇된 성경 해석으로 영적 진단서 처방을 해주면 기대했던 영적 치유가 아닌 영적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가계저주론이 왜 잘못된 영적 처방인지를 명백하게 밝혀내고 성경의 바른 해석을 통해서 가계저주론으로 인해서 영혼의 방황과 불안과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며, 이 그릇된 교리를 비판하며 바른 가르침을 베푸는 모든 분들의 손에 필요한 장비와 무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진리의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심령과 마음을 인도해 주셔서 독자 각자의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기도하며 이 책을 정독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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