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교회성장연구원

사명선언문
원장프로필
교회성장
설교
교리
교회음악
도서안내
연락처

 

 

 

 

 

누구나 전도할 수 있다
행 9:17-22

 

 

 


물길이 있는 곳에는 두루미가 물고기 사냥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긴 다리와 부리를 가진 두루미는 물고기를 잘 잡을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두루미가 물고기를 잘 잡을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지만, 모든 두루미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몸이 물에 적셔지고 장시간 물고기의 동태를 집중해서 살펴보는 수고를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두루미, 또한 물고기 잡는 기술을 익힌 두루미만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거듭난 신자 모두는 전도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새롭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전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소유한 것과 실제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거듭난 신자는 누구나 전도할 수 있다. 전도는 교육, 성별, 재능, 건강, 나이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전도할 수 있다. 그러나 준비된 사람, 오직 전도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킨 사람만이 능력 있는 전도를 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구나 준비를 갖추면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될 수 있다. 능력 있는 전도를 위한 2가지 주요 조건을 생각해 보자.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개인적인 구원의 체험과
확신을 소유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받기 전까지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다. 종교적 열심은 그러나 구원의 감격으로 인해서 비롯된 열심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종교적 열심, 즉 자신의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는 자세는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 받으려는 자세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현재도 선행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나름대로 전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잃은 영혼들을 더욱 지옥에 가도록 부채질 하는 미혹의 사람들이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받기까지 사실상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역사를 훼방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 확실한 구원을 받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전파하는 참되고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확신을 가지고 선언했다. (딤전 1:15)

 

이처럼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체험하고 확신한 사람의 일이다. 잃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는 소원과 능력을 가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확신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수 없다. 또한 구원의 확신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잃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분명히 인도할 수 없다. 토레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개인적인 구원의 체험적 지식은 다음과 같은 3가지가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1)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몸으로 죄를 지고 가셨기 때문에 자신의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지식; (2)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죄의 힘으로부터 매일 자신을 건져주시고 있다는 지식; (3)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의지를 전적으로 순종함

 

바울의 구원(회심)의 체험과 확신은 1세기에 이루어진 초대교회의 전도 활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반면 웨슬리의 회심과 확신은 18세기 영국과 세계에서 진행된 전도 활동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Holy Club을 만들어 엄격한 경건의 생활을 살았으나 율법에 얽매인 생활을 했고, 영국 성공회의 사제로서 안수를 받고 수많은 설교를 했으나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열망을 품고 미국의 조지아주에 선교사로 갔으나 처절하게 실패를 경험했다.

 

모라비안(Moravian) 교도들을 통해서 구원의 중요성을 깨닫고 본국 영국으로 돌아와서 London에서 열리는 모라비안 신자들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론의 한 부분이 읽혀지는 동안 구원의 확신을 경험하게 된다. 웨슬리는 그 경험을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저녁(1738년 5월 24일)에 나는 매우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알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모임을 찾아갔다. 그날 모임에서는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론이 읽혀지고 있었다. 8시 45분 경 그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심령에 주시는 변화에 관해서 묘사하고 있을 때 나는 나의 심령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만이 구원하신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나의 죄들을, 심지어 나의 죄마저, 담당하셨다는 것과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느꼈다.”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는 웨슬리의 신앙의 핵심이 된 것 뿐 아니라 이후 50년간 그의 설교의 주요 재료가 되었다. 웨슬리가 구원의 확신을 경험한 이후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부흥 운동은 18세기 영국과 전세계의 전도 사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전도는 구원의 확신을 소유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설교자의 황태자로 불려지는 찰스 스펄전의 개인적인 구원의 체험은 19세기 후반의 영국과 미국 뿐 아니라, 오늘날 전세계의 교회와 전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사춘기인 10살부터 16살까지의 기간 동안 하나님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비롯되는 죄책감으로 엄청난 심적 부담과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는 당시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어렸을 때 죄에 대해서 슬픔을 많이 느꼈다. 주야로 하나님의 손이 나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나는 밤에 잘 때면 무저갱에 관해서 꿈을 꾸었고, 깨어나면 꿈에 보았던 비참한 일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나님의 집에 가도 나의 찬송은 곧 한숨이었다. 잠자러 방에 들어가면 눈물과 신음 중에 눈을 감았다. 기도를 드려도 소망과 쉼이 없었다. 하나님의 율법이 끝이 10개로 갈라진 채찍이 되어 나를 매질했고, 그후에는 소금으로 상처난 곳을 비벼서 고통과 탄식 속에 흔들거리며 떨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50년 1월 6일 눈이 몹시 오던 주일에 큰눈에 길이 막혀 어쩔 수 없이 콜체스터의 아틸러리 거리에 있는 Primitive 감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이 교회당에서 평신도 설교자의 단순하고 직선적인 메시지를 듣고 스펄전은 구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체험은 그의 심령을 완전히 변화시켰고, 그로 하여금 열정적인 전도자가 되게 만들었다.

 

스펄전에 의하면 그날 그 예배당에는 12-15명 가량의 사람들이 있었다. 설교자는 교육을 받지 못해서 본문을 읽을 때 발음마저 틀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날 그 평신도 설교자의 메시지를 통해서 후에 세계적인 전도자가 될 스펄전을 구원하셨다. 그날 설교 본문은 이사야 45장 22절이었다.“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그리고 설교자는 다음과 말했다. “본문은 ‘앙망하라’고 말했다. 앙망하는 것은 많은 수고를 요하지 않는다. 앙망하는 것은 당신의 발이나 손가락을 드는 일도 아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앙망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 당신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앙망할 수 있다. 바라보는 일은 수천 시간이 요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앙망할 수 있다. 심지어 어린아이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은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바라본다. 자신을 앙망하는 일은 쓸데 없는 일이다. 당신 자신 안에서 아무 위로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설교자는 회중석 의자에 앉아 있던 스펄전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이, 매우 슬퍼보이는데. 오늘 내가 전하는 본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살든 죽든 항상 비참할 거요. 그러나 오늘 이 말씀에 순종하면 당장 구원을 받을 것이오.”그리고는 손을 들어 외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바라보라! 바라보라! 바라보라! 당신은 바라보고 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전혀 없다.”

 

스펄전은 이 설교를 듣고 회심하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50가지나 되는 것을 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라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거의 바라볼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또한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분만을 바라보는 단순한 믿음에 관해서 아주 열정적이었던 그들과 같이 찬양했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집으로 오면서 내내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존 번연이 논밭에 있던 까마귀들에게 자신이 회심한 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한 말이 무엇이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너무 충만해서 말을 안 하고는 배길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만 했다.”

 

당신은 바울이나 웨슬리나 스펄전의 경우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개인적인 구원을 받았는가? 그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에게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는가? 당신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매일 죄의 힘에서 건짐을 받고 있는가? 능력 있는 구령자가 되려면 이러한 첫 번째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2.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전도자가 된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가진 것 뿐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도 받았기 때문이었다. 구원의 확신을 통해서 전도자는 전할 내용, 즉 메시지를 받는다. 반면 성령충만함을 받음으로 전도자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다.

 

행 1:8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증거한다. 여기 성령이 임하신다는 말씀은 행 2:4에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는 말씀을 뜻한다. 성령이 임하면, 즉 성령충만함을 받으면 권능을 받아 구원의 메시지를 능력 있게 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토레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임재가 당신의 모든 방과 벽장과 존재를 가득 채우시도록 해서, 당신의 모든 목적과 모든 감정과 모든 생각과 모든 상상과 모든 행동과 모든 말을 성령이 다스리시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갈 5:22),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고(엡 5:20), 기도의 능력을 얻으며(엡 6:18), 전도와 사역의 능력을 얻는다(행 1:8).

 

그러면 성령의 충만함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행 5:32은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고 가르친다.

 

탁월한 신학자요 전도자요 목회자였던 토레이(R. A. Torrey)는 순종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순종은 무엇을 뜻하는가? ... 순종은 (단지 한 가지, 두 가지, 세 가지, 혹은 네 가지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다. 순종의 핵심은 의지에 있다. 순종의 본질은 하나님께 의지를 양도하는 것이다. 순종한다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기 제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당신은 저를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곳에 보내시고, 당신이 원하시는대로 제게 행하시며, 당신이 원하시는대로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The Person and Work of the Spirit, 242)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고 있던 무렵 연합군은 일본에 무조건적인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을 요구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원폭으로 말미암아 잿더미가 된 이후에야 항복을 하면서, 일본은 천황제도를 유지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연합군은 이를 수용했지만 일왕도 연합군 총사령관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조건 하에 그렇게 했다. 연합군은 일본이 항복할 명분은 주었지만, 승전의 실리는 챙긴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일본은 무조건적인 항복을 한 것이다.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은 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USS Missouri 함상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주재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 군함 위에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때 백악관에 계양됐던 성조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일본의 외무장관 마모루와 요시지로 장군은 "일본군의 무조건의 항복"을 담은 2개의 문서에 서명해야만 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 향한 순종은 무조건적인, 전폭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요에 못 이겨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신다.

 


토레이는 구약에서 온전한 번제가 제단에 드려지면 희생 제물 안팎의 그 어떤 것도 성소로부터 하나님의 불이 임하여 제물을 태우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었음을 지적하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온전한 번제로 제단에 드리면 우리 안팎의 그 어떤 것도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불, 즉 성령이 임해서 제단 위의 제물을 받으시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나의 모든 것이 제단 위에 있습니다”라고 참으로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오랫동안 불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러한 완전한 순종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 심령의 대부분의 벽장의 열쇠를 하나님께 드리지만, 몇몇 작은 벽장의 열쇠들은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자신들이 간직하려고 한다. 그러면 축복이 임하지 않는다.” (같은 책, 243)

 


순종과 더불어 성령충만함의 다른 중요 요소는 기도이다. 눅 11:13은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한다. 따라서 기도는 성령충만함을 받는 중요한 요소이다. 초대교회는 성령충만함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일에 모범을 보였다. 스펄전은 '영혼을 위한 산고'(Travailing for Souls)라는 자신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기독교 역사의 이른 새벽에 교회는 수적인 증가를 하기 전에 준비를 했다. 간절한 심령으로 다락방에 앉아있던 순종하는 제자들을 보라.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심령은 주님이 돌아가신 것으로 인해서 염려로 가득차 있었다. 또한 각 심령은 성령의 약속된 보물을 받기를 원했다. 그곳에서 일치된 심령과 마음으로 씨름하는 기도를 드리며 기다렸고, 보혜사가 주어졌으며, 3,000명의 영혼이 주어졌다.... 이와 같이 살아있는 열정과 뜨거운 소원은 새롭게 되는 시기가 임하기 전 항상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인지되었다.”(Travailing for Souls, 154)

 

스펄전은 또한 '기도회'(prayer-meetings)라는 자신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기도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곳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며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들었고, 방언을 하게 되었으며, 예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셨던 능력으로 옷 입었다...이 능력이 그들 안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가! 평범한 어부들이 탁월한 하늘나라의 전령들이 되었다....이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의 수준으로부터 들림을 받아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되었고, 그들 심령과 마음 속에 들어와서 내주하시는 하나님 자신으로 충만해졌다. 그 결과 약하고 두려워 떨던 베드로가 사자 같이 담대해졌고,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기를 원했던 성급한 요한 위에 파멸이 아닌 구원과 축복의 불이 임했다. 교회가 항상 크게 부족한 것은 성령의 능력이다... 복스러운 삼위일체의 제삼위가 되시는 분으로부터 비롯되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mysterious and supernatural) 에너지가 있다....우리가 성령을 소유한다면 이 영적인 능력은 사도 시대에 나타났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현저히 나타난다. 우리가 성령을 소유하기 원한다면 그분을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장소는 기도회인 것이다... 진실로 기도회는 성령을 만나는 곳이며, 기도회는 그의 전능하신 능력을 얻는 수단이다. 우리가 그분을 소유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여러 사람과 더불어 모여야 하고,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며, 더 간절함으로 살펴야 하고, 더 굳건한 일관성을 가지고 믿어야 한다. 기도회는 능력을 받기 위하여 지정된 장소이다.” (Prayer-Meetings, 520-1)

 

필자는 지난 4월 2일 서울의 B 교회의 주일낮예배에서 설교했다. 2부 예배가 시작될 즈음 B 교회의 집사님들이 예배를 위해서 강단 앞으로 나와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필자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는 것을 현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날 필자는 성령의 능력에 붙들려 설교했으며 회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처럼 기도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일에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또한 지난 6월 17일 서울의 G 교회에서 폐회기도를 인도하기 전 격려와 기도를 부탁하는 가운데 강력한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했는데, 이어서 기도를 인도하는 중에 기도를 인도하던 필자 뿐 아니라 참석자 다수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눈물을 많이 흘리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의 일에 헌신하는 역사가 있었다. 그날 기도가 마친 후 익명의 성도 두 분이 필자의 전도와 사역을 위해서 큰 액수의 헌금을 기증했다. 그날 필자는 필자의 사역과 관련해서 헌금 뿐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일은 성령의 충만함과 인도함이 기도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에 더해서, 지난 6월 21일 서울의 B 교회의 수요예배 전에 홀로 기도하는 중에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과 성령의 권능에 대한 강렬한 소원을 느끼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이 일 역시 기도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일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고(행 9:6) 금식하며 기도했다(행 9:11). 아나니아의 기도도 바울이 성령충만함을 받는 데 한몫을 했다(행 9:17). 따라서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순종과 기도로 성령충만함을 받기에 힘써야 한다.

 

성령충만함은 이처럼 순종과 기도의 영적 원리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임한다. 바울을 비롯해서 동서고금의 교회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능력 있는 전도자들은 항상 순종과 기도의 삶을 실천했던 성령충만한 성도들이었다.

 

거듭난 신자는 누구나 전도할 수 있다. 그러나 전도를 할 수 있는 가능성과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능력 있는 전도인은 조건을 충족시킨 사람이다.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회심 사건은 2가지 중요한 조건을 보여준다. 첫째 조건은 예수님을 통한 개인적인 구원의 체험과 확신을 소유해야 한다. 둘째 조건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당신은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었는가?

 

 

 




 

 

 


© Copyright 2005 21세기교회성장연구원 All rights reserved.
July 12, 2006 1:01 PM

5612 James Ave. #407A Fort Worth, Texas 76134 USA
전화 817) 551-7348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