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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름다운 은퇴식

 

 

 

2006년 4월 23일. 서울 종로에 있는 116년의 역사를 간직한 중앙감리교회(이후 CMC)에서는 교회 역사상 최대의 변화와 성장기를 이끌며 지난 37년간 한결같이 충성스럽게 CMC를 담임해왔던 정영관 목사(도춘옥 사모)의 원로목사 추대식이 있었다.

 

감리교회의 초대 선교사였던 아펜젤러에 의해서 개척된 CMC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감리교회로서의 역사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 교단에서 진행되던 갈등의 중심부에 놓이게 되면서 교회는 큰 상처를 입고 쇠퇴기로 접어든다.

 

쇠퇴의 골이 깊게 파인 1969년 3월. CMC는 강력한 목회지도력을 가진 34세의 목회자의 부임과 더불어 회복과 도약의 결정적인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CMC로 오기 전 봉일천감리교회를 담임했던 정영관 목사는 CMC에서 1년간 부목사로 섬긴 후 담임목사가 된다.

 

그러나 신임목사가 물려받은 유산은 500평의 대지와 낡고 쇠락해서 삐거덕 소리가 요란한 건물 및 80여 명의 교인이 있는 교회였다. 당시 CMC는 5명의 장로가 섬기고 있었는데, 천주교인 심지어는 무당을 부인으로 둔 장로들의 가정은 영적으로 전혀 본이 되지 않았으므로 교회에서 장로들은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신임목사는 우선 장로들을 세우는 일을 시작했다. 1달에 한 번 장로조찬기도회를 가지며 그들을 말씀으로 세웠고, 또한 그들과 더불어 사역에 관해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목사가 장로들과 더불어 사역을 논의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교회의 임원들은 목사의 제안을 전폭적으로 수용했고, 이와 더불어 임원회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교회는 빠르게 부흥하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신임목사의 첫 봉급은 1만5천 원에 불과했으므로 성미를 받아 생활에 보태야만 했었다.

 

목회자 가정의 생활은 이처럼 빠듯했지만 교회 건축을 위해서 교회 부지 500평 중 200평을 팔아 건축비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은 인간적인 방법이라고 여겨 단호히 반대했다. 오히려 신임목사는 건축헌금을 위해서 매달 11,430원을 2년간 부어 3십만 원을 마련하는 적금계획을 들도록 교회를 설득했다. 물론 이러한 적금계획은 빠듯한 목사의 봉급 지급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신임목사는 담대하게 이 일을 추진했다.

 

그 결과 2년 후 건축비가 3십만 원이 모아졌다. 그러나 건축헌금이 3년째 진행되면서부터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성도들이 건축에 더욱 열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심지어 회갑연을 통해 받은 돈 전부를 건축헌금으로 드리는 일까지 생기면서 건축헌금은 3년 만에 무려 삼천만 원에 이르게 되었다. 교회는 곧 태화 사회관 관장집 부지를 1억5천만 원에 매입해서 건축을 준비했지만, 3천8백만 원을 제 때에 갚지 못해서 땅 일부를 파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 부지가 도시의 건축계획에 들면서 자금이 급히 필요하게 되자 의사였던 이병헌 장로가 은퇴 자금으로 사용하던 2억 원을 모두 기증해서 기금을 마련함으로 교회는 위기를 넘기고 필요한 부지(884평)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곧 교회는 빈손으로 120억이 드는 공사를 시작하면서 또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모험을 거듭 감행하며 1983년 지상 12층(지하 3층, 건평 6,205평)의 웅장한 현대식 건물을 완공한다.

 

현재 중앙감리교회는 서울의 종로 한복판에 자산가치 수백억 원에 이르는 현대식 건물을 소유해서 가장 높은 2개 층을 교회가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무실과 사업체에 임대해 주고 있으며, 주일에 넓직한 주차장 등 훌륭하고 편리한 시설을 사역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목회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국내외선교에 기여하고 있다.

 

2000년에는 서울관광고등학교를 인수해서 기도와 인력 및 재정을 헌신적으로 학교에 투자하며 학원복음화에 앞장서고 있고, 지난 해에는 3억2천5백만 원이 넘는 돈을 미자립교회, 타선교기관 및 해외선교를 위해 사용함으로 서울연회 감독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또한 CMC를 통해서 배출된 33명의 목회자는 세계 전역에서 활발하게 사역에 임하여 왔고, 그 가운데는 정영관 목사(도춘옥 사모)의 세 아들이 포함되어 있다.

 

정영관 목사는 반평생을 서울의 한복판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해 왔으며, '도심지 목회’를 주제로 목회학박사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이력(성역 45년)을 바탕으로 은퇴 후에도 도심지목회연구원을 설립해서 목회 연구 및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이날 원로목사 추대식 전에 정영관 목사는 주일낮예배 시 중앙감리교회의 담임목사로서 그가 목숨처럼 사랑했던 성도들에게 고별설교를 했다. 그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목회의 7가지 원칙과 실천은 CMC가 어떻게 그의 지도력 아래서 성공적인 전향교회(turn-around church)가 되었는지, 왜 그의 목회가 그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설교 제목: 나는 이렇게 중앙교회를 사랑했다(행 20:17-38)

 

첫째, 나는 정직하게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당하게 왜곡해서 사용함으로 나의 유익을 구하며 인기를 끄는 일을 하려 하지 않았고, 순수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둘째, 나는 겸손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교인들로부터 섬김을 받으려 하는 대신 성도들과 사람들을 섬기려 했다. 특히 나는 평생 장로들을 섬겼다.

 

셋째, 나는 어느 누구의 재물도 탐하지 아니했다. 삶이 어려워도 궁핍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지 않았고 비굴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교회가 거대한 빌딩을 완공하고 소유한 후에도 입주자 누구에게도 협박이나 은근한 말로 돈을 구하지 않았다. 목사의 봉급으로만 생활했고, 교인들이 사랑의 뜻으로 전해주는 촌지도 모두 교회를 통해 주님께 드렸다. 나의 모든 설교 원고를 이면지로 사용할만큼 교회의 비용을 절약하는 일에 힘썼고, 사적인 돈이나 공금을 일절 깨끗함으로 관리했다.

 

넷째, 나는 대접을 받으려 하지 않고 대접하는 삶을 살았다. 사람들과 만나 식사를 할 때도 거의 내가 대접을 하곤 했다.

 

다섯째, 나는 헌금이 하늘나라에 복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최소한의 돈으로 생활했고 헌금에 풍성했으며 나 자신을 위해서 재물을 저축하지 않았다.

 

여섯째, 나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았다. 교인들을 목사의 졸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으로 여기고 대했다. 양의 젖을 짜서 나를 배불리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평생 고독하게 목회를 해왔으며, 나의 문제나 은퇴가 거론될 때 아무도 나를 위해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일곱째, 나는 권모술수를 쓰거나 중상모략을 하지 않았다. 소수의 사람들을 만나 미리 의견을 절충하지 않고 회의에서 직접 의견을 제시하곤 했으므로 때로 직분자들의 반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공평하고 정직하게 일하려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중앙감리교회는 37년을 이처럼 목회한 정영관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하면서 그에게 4억5천만 원 상당의 아파트와 법정 퇴직금 및 1억 원의 별도 퇴직금과 담임목사로 재직하며 사용하던 승용차를 은퇴 선물로 드렸고, 매달 200만 원(목사님 별세 시 사모님께 100만 원)을 지급해 드리기로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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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2, 2006 12:3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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