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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응도가 높고 수용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라

 

 

 

 

도날드 맥가브란과 윈 안은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호응도가 낮은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주장은 성경적인 것으로서 주님의 가르침과 사역에 근거하고 있다(마 10:11-15; 막 6:10-11; 눅 9:4-6).

 

전도자들이 자신들(즉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도시를 떠날 때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적으로 예언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또한 제자들이 호응하지 않는 사람들과 더불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물론 어떤 지역사회가 말씀에 대한 호응도가 높지 않다고 해서 성급하게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잃은 영혼들에 대해서 오래 참으실 뿐 아니라 복음을 처음 듣고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나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포기하기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진지하고 충분한 전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반면 주님의 가르침은 말씀에 호응도가 높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제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함을 시사한다. 레이 스테드만은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은 교만하며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으셨다.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자신이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 자신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으라. 그러나 외모를 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심령의 가난함과 필요을 느끼는 자에게 가라.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마 13:3-8과 18-23은 불신자들이 영적 관심에 있어서 각기 다른 단계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각기 다른 네 부류의 청취자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말씀에 호응하지 않는 사람들(19). 둘째, 말씀을 피상적으로 듣는 사람들(20-21). 셋째, 말씀에 대하여 세상적으로 반응을 하는 사람들(22). 넷째, 말씀에 잘 호응하는 사람들(23).



하나님의 말씀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것과 영적인 것에 대한 것에 대해서 일체의 관심이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피상적으로 듣는 사람들은 참된 회심이 아니라 감정적이며 종교적인 경험에 반응을 하기 때문에 말씀을 기꺼이 받지만 오래 간수하지 못한다. 세상적인 사람들은 처음에는 말씀에 반응을 표하지만 곧 세상적인 것에 압도를 당하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에 호응을 잘 하는 사람들은 성령께서 말씀을 잘 받도록 심령을 예비하신 사람들로서 진지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거부와 수용을 나타내는 아래와 같은 도표는 주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번은 복음에 대해서 호응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며, 15번은 복음에 대해 호응도가 매우 높은 사람을 뜻한다. 도표의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8번)은 복음을 기꺼이 수용하는 사람들로서 영적인 것에 관심이 있으며 점진적으로 믿음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그들의 호응도는 그러나 삶의 양식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삶의 양식의 변화와 복음에 대한 수용성은 인간사에서 정상적인 현상인 것이다.

 

맥가브란은 이러한 뜻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호응도의 변화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개인의 복음에 대한 호응도는 변할 뿐 아니라 쇠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나 잘 호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과 사회들은 복음의 호응도(혹은 수용성)에 있어서 각기 다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떤 기간--때로는 상당한 기간--동안 복음을 거부한 후에 복음을 받아들을 수 있는 수용성이 높아진다.”

 

복음에 대한 호응도가 높은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구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삭개오(눅 19:1-10), 니고데모(요3:1-21), 에디오피아 내시(행 8:26), 고넬료(행 10) 등이 모두 이 부류의 사람들에 속한다. 주님은 제자들이 복음전도를 할 때 이러한 사람들에게 집중하라고 당부하셨다. (마 10:11-15; 막 6:10-11; 눅 9:4-6).

 

바울도 구령하는 일에 있어서 이러한 사람들에게 집중했다(행 13:43-52; 18:1-7). 바울이 호응도가 높은 이방인들에게 집중한 것은 환경적이며 성경적인 요인들에서 비롯되었다. 바울이 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이유는 사 49:6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바울이 이방인들을 향해 복음을 전한 이유는 유대인들의 저항 및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하려는 바울의 전략적 선택 때문이었다.

 

허버트 케인 교수는 바울이 성공적으로 이방인 선교를 할 수 있었던 이유 몇가지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바울은 당시 아시아와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4대 지역(갈라디아, 아시아, 마게도니아 및 아가야)에 집중했다. 둘째, 바울은 큰 도시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셋째, 바울은 각 도시에 위치한 유대인의 회당을 먼저 찾아가 전도했다. 넷째, 바울은 우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이방인(회당의 이방인을 포함)들에게 전도했다. 케인의 이러한 지적은 바울이 선교에 있어서 영적인 차원 뿐 아니라 실제적인 차원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을 잘 보여준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책임 뿐 아니라 그 결과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는 복음을 맡았다는 것을 심각히 인식하고 있었다(고전 9:17). 그는 자신의 복음전도 생활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할 날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고전 3:10-15). 릭 워렌의 말처럼 복음의 사역자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신실해야 할 뿐 아니라 (고전 4:2) 열매도 맺어야 한다 (요 15:2).

 

복음의 호응도가 높은 사람들에게 복음전도를 집중하는 것은 성경적이며 전략적이며 가능한 것이다. 이 원리는 예수님이 가르치며 실천하셨고, 12제자와 사도 바울도 자신들의 사역에 이 원리를 적용했다. 초대교회 및 이 원리에 따라 사역을 하는 현대의 교회들은 최상의 회심교회성장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 원리를 적용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수용성이 여러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되며 시간에 따라 변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복음에 대한 수용성은 성령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성령은 복음을 잘 수용할 수 있도록 어떤 개인이나 한 무리의 사람들의 심령을 예비하신다. 따라서 수용성의 원리를 따르는 일은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족속(인류의 각 문화권)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명하셨으므로 우리는 복음에 대한 호응도가 높지 않은 사람들이나 지역사회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자원을 먼저 복음에 대한 호응도가 높은 사람들에게 투자해야 한다. 심지어 복음의 호응도가 낮은 모슬렘권에서 복음을 전할지라도 복음에 대한 호응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모슬렘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복음에 대한 호응도가 전혀 없거나 매우 낮은 사람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며 복음을 전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 이들도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며, 그 시기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할 때 혹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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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7, 2006 12:1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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