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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훌륭한 설교자이시기도 한 성서침례대학원대학교의 김택수 총장님의 흥미롭고 유익한 성경강해입니다.
2016년 12월 30일 금요일
김택수 목사의 행복담은 QT
제목: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다가 회복한 일꾼 마가
본문: 행 15:36-41; 디모데후서 4:7-11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유익한 사람(useful man),”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평가합니까? 여러분은 인생의 가장 힘들고 외로운 시기에 함께 있고 싶은 꼭 필요한 사람, 유익한 지체입니까?
마가는 한 때 불명예의 전당에 오른 기대주였습니다(행 13:13). 바울과 바나바, 마가 일행이 배를 타고 구브로를 거쳐 밤빌리아 버가 지역에 이르렀을 때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험산 준령이 가로막았습니다. 그곳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넘어가려면 타우로스 산맥을 관통해야만 했습니다.
타으로스 산맥(Toros Daglari, Taurus Mountains)은 터키 남부의 산맥으로 해발 3,333m의 알라다 산과 누르 산맥의 외딴 지맥에 속한 에르지예스 산이 이 산계의 최고봉을 이루며, 그 밖의 봉우리들도 대부분 2,000~2,700m로 솟아 있습니다. 해발 2,500m의 경사면까지는 소나무, 삼나무, 참나무, 향나무 숲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흰 석회석 산등성이가 많이 보입니다. 산맥 서부의 평균해발고도 1,000m인 지점에는 호수들로 둘러싸인 분지도 많습니다. 문제는 이 산맥의 길이가 450km에 달하는 험한 지역이라는데 있습니다.
마가는 이 높고 거칠며 멀고 먼 험난한 길에서 좌절하였습니다. 선교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으나 그 열정이 높은 산 앞에서 좌절했습니다. 선교의 열정과 흥분, 감동은 마가의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가는 바나바와 바울이 충고할 겨를도 주지 않고 두 선교사를 내팽개치고 어머니가 계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바울은 이 일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바울의 기대를 저버린 일꾼이 되었습니다. 훗날 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마가가 우리를 버렸다”고 말하며 그와 동역하는 것을 거부할 정도로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선교를 어렵게 만든 젊은 사역자였습니다.
물론 마가는 처음부터 배신을 꿈꾼 것이 아닙니다.
마가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거나 어렵다고 쉽게 떠날 생각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최고의 영적 지도자였던 바울과 바나바가 많이 격려했겠지만 그래도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30년 목회를 하면서 이런 형제자매를 많이 만났습니다.
순수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
열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년을 채우지 못하는 분들.
은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덕이 모자라는 분들.
헌신하지만 언제 헌신을 중단할지 모르는 사람들.
우리 대부분이 처음부터 누군가를 실망시킬 생각을 갖고 시작하진 않지만 용기가 꺾이고, 헌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 기대를 저버린 일꾼이 되어버립니다.
마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에 하나님의 기대, 교회의 믿음, 선교사들의 신뢰를 하루아침에 저버린 실패한 젊은이였습니다.
마가 요한이 처음부터 눈 밖에 난 젊은이였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그는 다른 젊은이들이 선교사의 꿈을 꾸는 동안 실제로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위험을 택했습니다. 그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 섬기는 자리가 아닐지라도 기꺼이 섬기는 자리, 종이 되는 자리를 택할 정도로 훈련된 심성과 믿음을 가진 젊은 형제였습니다. 그가 장차 큰 일꾼이 되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의 시작은 참 좋았습니다. 마가 역시 우리들처럼 좌절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아, 난 무익(無益)한 존재로구나.”
“난 다른 사람의 기대를 저버린 실패한 사람이다.”
“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신으로 끝나고 말았다.”
여러분들도 교회 사역 속에서 믿었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어려움이나 경제적인 문제, 시간에 쫓기는 문제로 때로는 부득이한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처럼 보이지만 끝까지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일들을 겪을 때 맥이 빠지고 사역이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를 봅니다.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함께 전도하러 가지 않은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바나바와 대판 싸웠다”(행 15:38).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할 때 마가를 데려가자는 바나바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때로 우리들도 그런 고민을 합니다.
헌신도가 많이 떨어진 사람들을 다시 하나님의 일을 맡겨야 합니까? 자꾸 사고치는 사람에게 중임을 맡겨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명을 맡길 수도 안 맡길 수도 없는 일꾼들처럼 보이는 성도들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바울은 마가 요한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마가는 힘들면 다시 탈영하거나 또다시 일을 망쳐 놓을 가능성이 많은 사역자입니다.”
“마가는 자기 멋대로 행동하여 팀워크를 깨뜨리고, 자신의 멘토들의 충고마저 듣지 않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혹시 누군가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만일 누군가가 이렇게 여러분을 비평한다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마가 문제로 복음의 사선(死線)을 함께 넘나들던 두 지도자가 심하게 싸우고 갈라섰습니다. 그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았던 마가는 얼마가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마가 요한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실패를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한 일꾼이 됩니다. 유익한 사람, 꼭 필요한 일꾼으로 인정받습니다.
눈밖에 난자가 어떻게 유익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마가 요한이 하나님 앞에서 유익한 일꾼이 되는 데는 세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첫째로, 신뢰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1. 참된 회개는 하나님이 세우신 그 자리로 돌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립니다.
마가는 사역지를 무단 이탈해서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지만 선교사로 인준 받고 파송 받았던 안디옥 교회로 다시 돌아와 사람들의 질책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하나님이 다시 쓰시길 기다렸습니다.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이런저런 비판을 감수하며 섬기는 것이 참 회개한 자의 모습입니다.
2. 참된 회개는 질책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데 왜 나를 그리 무시하듯 합니까?”라고 큰 소리 치며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회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회개란 잘못에 대한 어떤 책임이나 질책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전처럼 호의를 보이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그럴지라도 기분 나쁘게 대응하지 않는 것이 회개한 자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회개한 것이 아니라 잘못했기에 회개한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호의는 그 다음입니다.
3.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내가 회개했는데도 사람들이 잘 믿어주지 않는다”고 다른 지체들의 태도에 불만을 폭발시켜선 안 됩니다. 사람들이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회개를 충분히 검증(檢證)하실 때까지 우리들은 온갖 냉대(冷待)나 찬밥 신세를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환난 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 된 발 같으니라”(잠 25:19).
독일 신학자 델리취는 이 말씀을 이렇게 의역했습니다. “어려운 날에 믿을 수 없는 자를 의지하는 것은 부러진 이로 베어보려는 것이요, 흔들리는 다리로 지탱하려다가 넘어지는 격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어려운 때도 진실한 사람, 힘들 때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질책하는 바울에 대해서 우리 마가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킹스 대학(King's College) 학장인 밥 쿡(Bob Cook)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반대하는 사람도 사용하실 권한을 갖고 계신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고 그를 적으로 몰거나 싫어해선 안 됩니다. 마가의 위대성은 자신의 그릇된 태도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그 때 일을 기준으로 판단의 근거를 삼고 있는 사람, 자신의 회개를 아직까지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바울의 질책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진실한 책망과 비난에 대해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성장할 수 있고 실패를 딛고 다시 멋지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바나바의 한결같은 신뢰와 격려가 필요했습니다.
실패한 마가 요한에게 “정신 차리라”고 혹독한 태도로 질책한 것이 바울식 사랑이라면, 한 번 더 회복할 기회를 준 사람은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회개한 마가의 태도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그가 실패한 부분에서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했습니다. 사실 마가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도망쳤던” 부끄러운 전력이 있었고(막 14:52), 선교지에서도 이탈한 도망 전과 2범이지만 바나바는 마가의 진심 어린 회개를 확신했습니다. 바울과 갈등을 겪으면서까지 마가 요한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습니다.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격려를 통해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다시 갖게 된 것입니다.
바나바도 바울처럼 마가를 책망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적지 않은 나도 타우로스 산맥의 멀고 힘든 길을 넘어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너는 젊은 애가 왜 그것 밖에 안 되냐?”
하지만 바나바는 마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주었습니다. “그래 선교라는 것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지? 네가 중도에 포기함으로 놓친 축복이 얼마나 되는지 아니? 나 바나바와 바울은 사실 ‘이고니온에서 많은 사람들이 돌로 때려죽이려는 위험한 순간도 겪었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지. 나는 마가 형제가 그런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을 경험하는 일꾼이 되길 바란다!”
우리 주위엔 질책과 비난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번 더 기다려주고, 기회를 주고, 신뢰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면 순간적인 실수를 했을 지라도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며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넘어지기도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
그렇습니다. 저는 한빛침례교회 목회자로서 넘어진 성도들이 다시 회복하여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굳게 세워주는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처럼 회개하는 몸짓을 보이는 형제자매들에게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길 바랍니다(시 103:10). 다시 신뢰하는 일이 힘들더라도 말입니다. 신뢰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우리 인생에는 격려하는 바나바가 필요합니다.
셋째로, 회개를 증명할 기회를 줄 때 탁월하게 헌신하십시오.
기대를 저버린 사람, 신뢰를 잃어버린 일꾼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 신실성
② 완성도
③ 높은 수준의 열의
④ 탁월성이 필요합니다.
마가 요한은 결국 자신의 헌신을 통해 그의 회개를 증명해 보였습니다.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해냈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가는 바울의 기대도 충족시켰고, 바나바의 믿음에도 보답했습니다.
첫째로, 마가는 실망스런 자에서 위로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4:10절에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바나바의 조카 마가를 영접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바울이 마가를 동역자로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리스다고, 유스도 등과 같이 마가를 언급하면서 뭐라고 합니까?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골 4:11).
마가는 이제 바울의 가슴에 ‘실망스런 존재가 아니라 위로(慰勞)하는 동역자’가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마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통해 회복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마가 요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내 아들 마가”(벧전 5:13).
그것은 참으로 감격스런 호칭이 아닙니까! 대사도(大使徒) 베드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首弟子) 베드로가 마가를 아들이라 부른 것은 “내 영적인 아들 마가의 믿음은 나 베드로의 믿음과 같고, 마가의 헌신이 나의 헌신과 같고, 마가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나의 사랑과 같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둘째로, 마가는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셋째로, 마가는 위대한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가 부름 받던 날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까지 그가 친히 예수를 보고, 만지고, 듣고, 같이 생활했고, 가르침 받았던 모든 것을 신실한 믿음의 아들 마가에게 전수해 주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말씀으로 마가복음을 기록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마가가 전한 복음을 전해주게 하였습니다. 배도자의 삶에서 『복음을 맡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가르침, 우리 주님이 행하신 일들, 우리 주님이 세상에 주고자 하셨던 기쁜 소식을 마가에게 하나님은 맡겨 주셨습니다.
기도입니다.
“2016년 이런저런 모습으로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다가 이제 2017년에는 온전히 회복한 일꾼, 위로하는 일꾼, 복음을 맡은 일꾼, 유익한 일꾼이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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