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부흥을
주옵소서
1. 부흥을 연구하는 이유
역사상 일어났던 모든 참된 부흥은 일정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7세기에 있었던 청교주의(Puritanism)나 경건주의(Pietism)에
의한 부흥이든지, 18세기 영국의 복음주의(Evangelical) 부흥이나 미국의 1차 대각성(First Great Awakening)
부흥이든지, 혹은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났던 2차 대각성(Second Great Awakening) 부흥이나 레이맨(Layman)의
기도 부흥이든지, 아니면 20세기에 있었던 세계적인 부흥(한국의 1907년 부흥 포함)이든지, 모든 참된 부흥은 일정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일정한 조건 속에서 발생한다.
부흥에 대한 연구는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약동했던 기독교의 본질을 직면하는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연구자는 큰 영감과 도전을 받게
된다. 부흥에서 비롯되는 삶과 사역의 특징은 우리의 삶과 사역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 되어 회개와 헌신을 촉구하는 각성제가 된다.
부흥의 조건을 공부하며 우리는 부흥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
필자는 앞으로 몇 차례의 글을 통해서 미국에서 일어났던 부흥을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미국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특별한 역사를 공부하며
독자와 더불어 부흥을 참되게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부흥을 체험하는 자리에 이르기를 원한다. 따라서 첫번째 글을 다음과 같은 기도와
더불어 시작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여, 부흥을 주옵소서!"
2. 부흥이란 무엇인가
부흥을 미국이라는 지역에 국한시켜 연구하기 전에 먼저 부흥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먼저 부흥이란 무엇인가? 부흥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영적으로 일깨워서 하나님과 깊고 부요한 영적 관계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성경에는 부흥
혹은 갱신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 여러 개 있다.
구약은 부흥과 관련하여 찰랍, 차야, 차다쉬와 같은 3가지
용어를 사용한다. 찰랍은 "변화" 혹은 "대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원수의 포위망에서 건져내어 하나님과의 풍성하고 기쁨에 넘친 관계로 이끌어 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차야는 "생명"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깊은 영적 삶을 주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차다쉬는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새로운 노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약도 부흥과 관련하여 아나카이노스, 에게이로, 아나스타시스와 같은 3가지 용어를 사용한다. 아나카이노스는 로마서 12장 2절에 사용된
용어로서 "새롭게 한다"는 뜻을 나타내며, 우리의 마음이 초점이 이 땅의 것으로부터 왕국의 우선순위에
모아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에게이로는 "일깨운다" 혹은 "일으켜
세운다"는 뜻으로 이전의 삶을 중단하고 하나님 안에서의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아나스타시스는 "부활"이라는
뜻으로 영적으로 잠자는 삶에서 영적으로 각성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흥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여 부흥의 역사를 이루신다. 따라서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이며 동시에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일한 결과인 것이다. 부흥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부흥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심령을 준비시키시고,
사람들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능력의 역사를 행하셔서 그분의 거룩하신 목적을 이루시는 것이다. 부흥은 또한 사람 편에서 볼 때
역대하 7장 14절("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에 제시된 하나님의
요구, 즉 겸비함과 회개와 기도와 하나님을 찾는 것과 같은 일을 준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얼 케언스(E. Earle Cairns)는 부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나는
부흥(revival) 혹은 갱신(renewal)은 하나님의 백성이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쇠퇴의 위기에서 돌이켜서 더욱 힘찬 영적인
삶과 증거와 사역을 하도록 회복시키시는 성령의 역사라고 정의한다. 부흥의 영구 불변한 요소들은 말씀과 기도와 성령과 사람을 그분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주권자 하나님이다." 또한 스티븐 올포드(Stephen Olford)는 부흥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찾아오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활기차게 하시며 하나님의 충만한 축복으로 인도하여 들이시는 하나님의 특이하고 주권적인 역사"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에드윈 오어(J. Edwin Orr)는 부흥은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 교회와 관계된 공동체에 신약적인 기독교의 부흥을 가져오는 성령의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마틴 로이드 존스(D. Martin Lloyd-Jones)는 부흥은 "교회가
계속 살아 있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이 그분의 영을 내려 보내시는 것이다. 이것이 부흥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더하여, 알 에이 토레이(R.A.Torrey)는 “부흥은 각성하는 시기요 생명을 주는 때인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에, 부흥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찾아오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생명을 그들에게
부여하시고 그의 백성들을 통해서 죄와 허물로 죽은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때인 것이다.”
3. 부흥은 언제 오는가
부흥은 그러면 언제 오는가? 역사를 통해서 보면 부흥은 항상 부흥을 필요로 할 때 일어나곤 했다. 달리 말해서 부흥은 교회가 영적으로
쇠퇴하고 사회가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났을 때 일어나곤 했다. 찰스 피니(Charles Finney)는 부흥은 "타락을
전제로 한다"고 말했다. 18세기 영국에서 복음주의 부흥이 폭발하기 직전이 그러했다. 영국은 16세기에는 종교개혁
부흥을, 17세기에는 청교도 부흥을 경험한 나라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영국의 교회와 사회는 영적, 도덕적으로 심하게 타락했다.
얼 케언스는 18세기 영국의 교회와 사회의 특징을 이렇게 지적한다. 지식인 사회에 유행하는 이신론(신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삼위일체, 예수님의
신성, 기적,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하는 이성주의적 종교), 도덕적 진부함으로 채워진 장시간의 설교, 목회자 대다수(5천 교회)의 경제적
궁핍과 이로 인한 비효과적 사역, 가난한 목회자들이 지역의 대지주의 식객으로 전락하여 대지주들의 상스러운 스포츠와 음주 시합에 참여하는
일, 거리의 난투로 인한 사망률의 증가, 도박의 성행.
이에 더해서 제임스 번즈(James Burns)는 18세기 영국의
교회와 사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영적 기근, 게으른 믿음, 저급한 이상, 강단의 열정을 비난함, 자격이 없는
사람을 목회자로 세움, 예배를 소홀히 함, 무법 활동을 일삼는 폭도들, 음주의 성행, 생명에 대한 무관심, 약자들에 대한
착취.
부흥이 오기 전 세속 사회는 사람을 만물의 중심으로 삼아 삶의 궁극적인 권위를 사람에게 부여하는 인본주의에 빠지고, 하나님을 떠난 사회는
결국 죄의 종이 되어 온갖 종류의 죄에 감염되어 버린다. 부흥이 오기 전 교회 또한 영적 침체에 빠져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며, 성경의 근본 진리를 떠나고,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이 없이 형식적으로 예배하며, 성령의 능력이 없이 사역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요구에 헌신하지 않는다.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온다. 부흥이 오기 전 교회와 세상은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 앞에 직면해 있다. 부흥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참된 부흥만이 심판 대신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온다. 엘리야의
부흥은 아합과 이세벨의 사악한 통치를 종식시키고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왔다. 프랑스 혁명과 같은 피비린내 진동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던 죄 많던 영국은 웨슬리와 휫필드가 일으킨 복음주의 부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 대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세계적인 선교의 대국으로 일어났다. 부흥은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직전, 즉 하나님의 축복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일어나곤 했다.
4. 부흥은 어떻게 오는가
부흥은 필요한 때에 올 뿐 아니라 필요한 조건이 충족될 때에 온다. 그러면 부흥의 조건은 무엇인가? 부흥의 조건은 두 가지를 포함한다.
그 첫째 조건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부흥을 주시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피동적인 수혜자라고 말했을 때 그는 이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부흥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이미 성경에서
약속하신 것이며, 그 약속은 사람이 맡은 바 책임을 수행할 때 성취된다는 것 또한 성경적 진리이다. 찰스 피니가 부흥은 "타당한
조건을 바르게 사용함으로 얻어지는 이성적인 결과"라고 주장했을 때 그는 이 점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부흥을 위한 둘째 조건은 사람이 부흥을 위한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 편에서 할 일은 무엇인가? 사람의 책임은 4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부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간절히 소원하는 것이다. 모든 부흥은 부흥의 필요를 절감한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이 부흥에 대한 열망을 품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할 때 일어나곤 했다. 부흥의 필요를 인식하고 열망하게
되는 일은 종종 성경을 읽는 데서 비롯된다. 로이드 존스의 말처럼, “우리는 신약을 읽을 때 신약교회를 바라보며 그 교회 안에
있는 이러한 놀라운 활력, 즉 이러한 능력, 기쁨, 포기, 흥분을 본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이와 같은가?’라고 물어본다.”
또한 부흥의 필요에 대한 인식과 열망은 교회사를 통해서 일어난 부흥을
연구할 때 주어지기도 한다. 1907년에서 1909년 사이에 만주와 중국에서 일어났던 부흥은 캐나다 선교사로 중국에서 사역하던
조다난 고포드(Jonathan Goforth)가 한국에서 진행되던 부흥을 참관하고 한국교회에 나타난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주한 선교사들과 한국 목회자들의 뜨거운 기도 생활에 영향을 받고 사역지로 되돌아가 부흥의 역사를 간절히 사모하며 부흥의
역사를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말씀을 선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부흥의 둘째 조건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빌리 그래함의 말처럼 “회개는 죄를 자백하는 것이고, 회개는 죄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며, 회개는
죄를 버리는 것이다.”어떤 종류의 죄이든, 그것이 작위(선을 행치 않는 것)의 죄이든 부작위(범하는 죄)의 죄이든, 숨겨진 죄이든
가장 좋아하는 습관이든, 모든 죄는 자백하고 버려야 한다(요일 1:9). 죄는 부흥을 위한 기도의 응답을 방해하기 때문이다(시
66:18; 사 59:1-2). 또한 죄는 부흥을 주시는 성령을 근심케 하며(엡 4:30), 소멸하기(살전 5:23)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대하 7:14)"고 선언하셨다.
부흥을 위한 셋째 조건은 사도 베드로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행 5:32).” 부흥의 역사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실 때 일어난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게만 성령을 충만히 채워주신다고 베드로는 증언한다. 그러면 순종이란 무엇인가? 또한 순종하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은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주님에 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 즉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다. 사랑은 순종을
통해서 표현된다.
로이드 존스의 말처럼 “사랑은 강력히 사로잡는 열정이며, 사랑은 언제나
순종에 의하여 그 자신을 표현한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즐거이 자신을 복종시킨다. 빌리 그래함은 성령 충만의 조건으로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복종이라는
말을 정의한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을 주장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것, 즉 100%를 양도하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 역시 같은 맥락으로 순종을 설명한다. “당신 모습 그대로의
당신 및 당신의 모든 일과 관심사와 이해 관계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는다면,
‘나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나는 값을 주고 산 바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분의 것입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분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든지 나는 상관 없습니다.’ 이것이 전적인 순종이며, 진정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로우신 목적에 우리 자신을 던져버리는 것이다.” 성경은 오직 순종하는 자만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부흥의
일꾼이 될 것을 약속한다.
마지막으로, 부흥의 넷째 조건은 기도이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부흥을 주시도록 기도한다.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시 85:6)” 교회사를
보면 모든 부흥은 기도를 통해서 일어났다. 교회사에 기록된 첫 번째 부흥은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이 10일간 모여서 기도에
전념한 후에 일어났다(행 1:14). 미국의 1차 대각성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기도를 강조하며 시작되었다. 미 동부의 인디안
사회에서 있었던 부흥은 데이빗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가 위로부터 능력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기도한 후에 일어났다. 1907년 한국의 부흥 역시 1903년 여름 원산에서 있었던 주한 선교사들의 기도회를 통하여 시작되었고,
선교사들 및 한국 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예수님은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라고 말씀하셨다. 찰스 스펄전은 여기서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과 영향력에 대해서 말씀하셨으며, 이것은 기도를 통해서 온다고 주장한다. 존 알 라이스(John R. Rice)는 부흥을
위한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일의 당위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얼마나 많은 설교자들과 교사들이 성령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워하는가. 그들은 기꺼이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고, 죄인들이 죄에 대해서 깨닫도록 기도하며, 자신들의 설교에 능력이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며, 그들의 설교에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면서도 정작 성령 그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두려워 한다. 실로 누가 부흥을 가져오는가? 누가 죄인들의 죄를 깨닫게 하며 죄인들을 회심시키는가? 누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지혜와 능력과 지도력을 부여하는가?” 로이드 존스는 부흥을 위한 성령의 능력을 요청하는 기도는 “끈질기고 긴박하며 강청하는
기도”라고 말하며, 성령의 능력을 위해서 “하나님께 탄원하라. 하나님께 간청하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애원하라”라고
도전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성경의 약속 때문에 부흥을 위한 성령의 은사는 (이 글을 읽는 독자와 필자를 포함해서) 모든 세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
위한 것임을 믿는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9)” 1907년 만주와 중국의 부흥은 성령의 부으심이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은사로 믿고 강청 기도했던 한 사람에 의하여
일어났다. 엘머 타운즈는 조나단 고포드가 한국의 부흥을 참관하고 중국으로 돌아가던 순례의 여정을 이렇게 적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분이 아님”을 믿으며 고포드는 중국에서 동일한 성령의 부으심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에 강력한
성령의 부흥이 일어났다. 주여, 이 글을 읽는 독자 모두에게 부흥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