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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의 이상적인 구조 (2)
“대부분의 교회들은 (거대 호화 유람선) 퀸 메리호가 뱃길을 바꾸는 속도만큼 빠르게 방향을 바꾸도록 허락을 하는 강력한 이사회들(당회, 집사회, 위원회 등)로 인해서 수렁에 빠져있다. 이러한 교회들은 조직과 관료적 형식주의에 의해서 구속을 받기 때문에 그들의 지역사회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창조적인 비전을 이행할 수 없다....당신의 사역이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관해서 전혀 모를 뿐 아니라 당신의 사역에 전혀 연결되지 않은 일단의 사람들 앞에 앉아서 당신의 모든 결정에 동의하도록 그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보다 더 곤혹스러운 일은 없다. 이러한 동작이 둔하고 반응이 없는 시스템은 교회에 있어서 예외가 아닌 규범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불신자들이 교회를 문화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고 자신들의 삶으로부터 동떨어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슨 이상한 일이 되겠는가?”
흥미로운 사례
서른 개의 가정이 기초가 되어 약 150명을 이루어 시작된 이 교회는 전형적인 보수적인 남침례교회였다. 영(Ed Young Jr.) 목사 역시 미남침례교단의 총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부친 에드 영 시니어(Ed Young Sr.)가 목회했던 몇몇 보수적인 남침례교회들 속에서 성장하며 목회를 배웠다.
그러나 영은 당시의 다른 젊은 목회자들처럼 혁신적인 교회를 목회하는 빌 하이벨스 목사나 릭 워렌 목사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보수적인 신학을 견지하면서도 창조적이며 혁신적인 목회철학을 가지고 목회하기를 원했다.
그러자 개척 멤버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버렸다. 그러나 영 목사와 나머지 사람들은 변화를 가속시키며 교회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러한 변화는 이 교회를 떠난 교인들 뿐 아니라 같은 교단에 속한 다수의 다른 교회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영 목사가 부임해서 8개월이 지나며 교회가 예배 장소로 사용하던 사무실 건물이 몰려드는 예배자들을 수용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자, 1990년 10월 교회는 기존 장소의 길 건너편에 위치한 750석을 갖춘 어빙문화회관 (Irving Arts Center)으로 이동했다.
이곳 어빙문화회관에서도 교회는 급성장을 지속해서 약 6년간 230명의 예배 참석자들이 3,000명으로 불어나게 된다. 이후 인근의 극장과 고등학교 강당을 차례로 거치며 마침내 1998년 4천 석 규모의 예배당을 완공해서 성장을 지속하면서, 현재는 3개의 위성 교회(satellite)를 포함해서 약 2만명이 모이는 교회로 훌쩍 자라났다.
이상적인 구조의 모델
초대 예루살렘교회나 안디옥교회도 1세기의 중동의 문화권, 유아기적 상태의 기독교, 유대교의 핍박, 로마의 정치적 압박과 같은 환경 속에 존재했던 교회로서 21세기의 한국교회나 재외(在外) 한인교회의 건강과 성장에 완벽한 모델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따라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의 보편타당한 모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교회가 영 목사가 목회하는 펠로십 교회와 같이 될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위에 언급한 펠로십 교회는 강점과 약점을 두루 갖춘 교회이지만 교회의 구조에 있어서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스태프(전담 사역자)가 이끄는 교회의 구조인 것이다. 영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펠로십 교회는 스태프가 이끄는(staff-led) 교회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교회 안에 지도력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지도력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장로들이나 집사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각 목사 혹은 디렉터가 자신의 부서의 결정에 책임을 진다. 아무도 교회의 스태프처럼 교회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그 당사자들이 교회 일을 지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구조는 펠로십 교회 뿐 아니라 릭 워렌이 이끄는 새들백 교회와 앤디 스탠리가 이끄는 노스 포인트 교회도 동일하게 채택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혁신적인 교회들은 왜 집사를 세우지 않고 있는가? 스탠리의 답변을 들어보자.
교회는 신권정체
“...신약성경은 초대교회들이 복수의 장로에 의해서 다스려졌음을 믿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교회 정체(政體)는 교회의 모든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도 아니고 목사 한 사람이 혼자서 다스리는 일인 독재도 아니었다. 교회는 그리스도크라시(Christocracy), 즉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정체였다. 그리스도가 그의 몸의 머리이셨다. 그리고 장로들, 즉 지도력의 은사를 가진 일단의 영적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으로 확신하는 바 대로 몸을 다스리도록 임명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서는 23명의 교회 장로들이 교회를 감독하는 책임을 지도록 결정했다. 나는 이 23명의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내가 유일한 목사는 아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목사와 장로라는 말들이 교환할 수 있도록 사용되어졌다. 사우스이스트 교회에서는 이러한 성경적인 정의들을 회복시키려 하기 때문에, 우리는 목사들과 장로들을 같은 뜻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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